콤케드 소식을 전해주는 콤콤이입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선교사자녀교육개발원(KOMKED)입니다. 매주 금요일 찾아오는 MK스토리입니다.
오늘은 네 번째, T국의 최*현 MK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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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모태신앙으로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주일에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교회에서 늘 전도사로 섬기며 주일학교와 중고등부를 이끌어나가셨습니다. 자연스레 저의 일상에는 교회가 자리 잡았습니다. 저는 부모님께서 선교사로 파송 받기 전까지 선교사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다른 목사님들과 선교사님들이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힘들게 타지로 나가 복음을 전파한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처음 부모님께서 선교사가 되겠다는 비전을 가지게 된 후, 여러 난항이 있었습니다. 파송교회가 갑자기 없어지거나 파송지가 갑자기 변경되는 등, 제대로 된 사역을 시작하기도 전에 부모님은 힘든 일들을 견뎌내며 선교를 준비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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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저는 2010년, 11살에 부모님과 함께 T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외국에 나간다는 생각과 비행기를 탄다는 생각에 매우 들떠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제가 살던 세상이 아닌, 또 다른 세상에 눈을 뜨는 것이었고 그것 자체가 저에게는 너무나도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10년 동안 키워주신 할머니, 할아버지와 다른 가족들을 두고 외국으로 나가 다시는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서럽기도 하고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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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타지에서의 생활을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아무런 말도 통하지 않는 미국 국제학교에서 영어의 기초부터 배워가며 수업을 따라가야만 했습니다. 기본적인 알파벳 외에 영어를 제대로 써본 적이 없는 저에게는 학업적인 면에서 다른 학생들보다 뒤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루에 몇 시간 동안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부해야만 했던 저에게는 너무나도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저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비웃는 다른 학생들의 비난 속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늘 혼자 다녀야만 했고, 그 외로움은 지금 생각해도 눈앞이 캄캄하고 심장이 아플 정도로 힘든 기억이었습니다. 저는 고작 11살이라는 나이에 혼자 지내는 것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아직 친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몇 년이 지나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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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힘들었지만 저는 부모님께 티를 낼 수 없었습니다. 동생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T국을 왔기 때문에 부모님은 동생에게 신경을 많이 써야 했습니다. 또한, T국으로 와 현지어를 배우기 위해 학원에 다니시며 주일에 섬길 교회에서의 사역 준비도 하시느라 바쁘고 지치신 걸 저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라도 부모님께 피해를 주면 안 되지'라는 생각에 힘든 걸 꾹 참고 늘 밝은 척하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쉼터는 학교도 집도 아닌 교회였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저 자신이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받지 못하는 따뜻함을 교회에 같이 다니는 언니 오빠들에게서 느낄 수 있었고, 주일학교 선생님들과 집사님, 권사님에게서 사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일주일 중에 주일을 제일 기다렸고, 주일이 제일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B시샬롬교회 교인들은 저에게 사랑을 알려준 소중한 교회 사람들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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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장녀로서 부모님께 해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남아있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부모님께 피해를 안 드리려고 했지만, 부모님께 힘들다고 이야기한 적이 딱 두 번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부모님께 너무 힘들다며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결국 전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제 말을 들어주지 않은 부모님이 너무나도 미웠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어떠한 이유로 저를 계속 T국에 두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교사 자녀의 삶을 살면서, 외국에서 한인으로 생활하면서 일반적인 사람보다 더 다양한 것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이름 앞에는 “선교사의 자녀"라는 꼬리표가 붙으며 그러한 이유로 저를 지켜보는 눈이 많고 제재당하는 것도 많았습니다. 사소한 실수에도 큰 욕을 얻어먹기 일쑤며, 저 자신보다는 부모님을 욕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한, T국 한인 사회가 좁아서 이상한 소문이 나기 쉬워 행동을 자제해야 합니다. 저를 비롯하여 많은 선교사님 자녀는 부모님을 욕하는 것이 무서워 행동에 제약을 걸고 조심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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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선교사 자녀가 된 것을 원망하기도 하였습니다. 남들은 다 하는 것을 그저 “선교사의 딸"이라는 이유로 할 수 없다는 것이 억울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여러 것들을 제재당함으로 저는 저 자신을 세상의 유혹에서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타의든 자의든, 제가 지금 이렇게 올바른 길로 걸어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부모님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서 열심히 사역하시는데 나의 행실 하나로 부모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선교사의 자녀로서 콤케드 같은 여러 선교사 자녀 캠프에 참가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겐 너무나도 큰 장점이자 행운입니다. 함께 참가한 다른 선교사 자녀를 보며 저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세계 각지에서 친구들을 만나 소통하며 그들의 일상을 알고 서로의 힘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행복한 일입니다. 6년 전, 콤케드에서 만난 친구들과 최근에도 연락하고 지내며 소통할 수 있음에 너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정신적으로 지지해주며 깊은 인연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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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국에서 인간관계에 지치고 학업적인 면에서도 힘들어서 온통 우울하고 침울한 생각만 들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의지하던 교회 공동체에서도 힘을 얻지 못하고 있을 때 선교사 자녀 캠프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수련회와 다를 바가 없다 생각하고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 때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는 말을 담당 목사님께서 해주셨습니다. 목사님께서는 “고난은 축복이다" 라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이렇게 지쳐있는데 이게 어떻게 축복일 수가 있는 걸까 하는 의구심 말고는 들지 않았습니다. 정말 힘들고 지쳐서 나쁜 생각들이 온종일 머릿속에 맴돌 때도 저 문장이 생각났습니다. 머릿속으로는 저게 말이 되는 이야기일까 싶다가도 가슴 깊숙한 곳에서는 저 문장이 정말 진실이기를 바라며 나중에 다가올 축복과 행복을 위해 버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니 정말 고난은 축복입니다. 그 고난은 나중에 더 큰 축복과 감사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고난들은 제가 하나님에 대해 간증할 것이 되었고, 이러한 고난들과 경험들을 통해 다른 선교사 자녀에게 말씀을 전하고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것이 되어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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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이 되기 전까지도 저는 비전이 없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은 많았지만 ‘이것이 하나님께서 내가 걷기 바라시는 그 길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범죄심리학을 공부해 피의자의 심리상태를 파악하는 일인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라는 직업을 갖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생각을 바꿔준 건 20살 때 교사로 참가한 선교사 자녀 캠프였습니다. 처음 교사로 참가하게 된 캠프였기 때문에 저에게는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학생으로 참가했을 때와는 달리 교사를 하면서 더 많은 아이에게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그들과 교제하는 시간도 더 많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었고, 누구보다 그들과 진지하게 이야기하며 그 아이들이 가슴 속에 혼자 몰래 품고 있던 아픔을 더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저만큼, 아니 저보다 더 아파하는 아이들을 보며 많이 힘들었습니다. 우울증 때문에 약을 먹으며 병원에 다니고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에도 마음이 철렁 무너져내렸습니다. 자기 탓이 아닌데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보며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보다 덜 힘들 수도 있고, 나보다 더 힘들 수도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나만큼은 안 힘들어했으면 하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그래서 점차 저의 꿈과 비전은 청소년 심리상담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가정이 재정적으로 매우 힘들고 부족하지만, 이제 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 길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고 이제야 그 길에 첫 발자국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저는 믿고 소망합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많은 선교사 자녀가 위로를 받고 힘낼 수 있게 돕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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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MK스토리는 KOMKED장학생으로 선발된 MK들의 이야기입니다. MK스토리의 저작권은 한국선교사자녀교육개발원(KOMKED)에 있음을 알립니다.
다음 주, 새로운 이야기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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