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케드 소식을 전해주는 콤콤이입니다.🦭
안녕하세요, 콤케드 소식을 전해주는 콤콤이입니다.🦭
콤케드(KOMKED)는 MK전문사역단체이며, 공식 명칭은 한국선교사자녀교육개발원(Korean Missionary Kids Education & Development Cente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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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매주 금요일 찾아오는 MK스토리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여섯 번째 이야기, C국의 박*애 MK스토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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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모태신앙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 아빠 두 분 모두 선교사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것도 몰랐을 6살 때 한국에서 S시로 이동하였고 처음에는 하루하루가 악몽 같았습니다.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종일 수업을 들어야 했고, 심지어 숙제도 정말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많은 MK에게 비슷한 고충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도 해야 했기에,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했기에 저는 초등학교까지 C국에서 잘 졸업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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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머리가 점점 커짐과 동시에 문득 한국에서 학교에 다니고 싶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중학교에 들어갈 때는 아직 너무 어리다고 부모님께서 제 말을 단칼에 거절하셨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다시 제안했습니다. 이때는 아빠가 저에게 기도해서 하나님의 뜻을 여쭤보고 ‘오케이'하시면 보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 다시 이 얘기를 꺼내지 않으셨습니다. 이 상황이 너무 답답하고 싫었고 엄마 아빠가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원망스러운 마음이 점차 저와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것만 같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의지로 이 땅에 온 것도 아닌데 왜 나는 이렇게 구질구질한 C국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가, 엄마 아빠는 왜 나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혼자인 느낌이었습니다. 저를 더 답답하게 했던 것은 기도 응답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몰라서 기도할 때 단지 필요할 때만 하나님께 요구하는 방식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듣지만, 마음으로는 전혀 깨닫지 못했던 말씀들과 나만의 신앙이 아니라 엄마 아빠가 전해주신 신앙으로 19년을 살아왔습니다. 저는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사고도 안 치고, 공부도 알아서 하고, 상식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도 없으니까 저는 제 신앙이 좋은 줄 알았습니다. 하물며 엄마 아빠가 선교사니까 저는 당연히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아래에 있는 줄 알았던 것이죠. 크나큰 착각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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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엄마 아빠 곁을 떠난 건 입시 때였는데 환경이 완벽히 달라져 공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저는 제 패턴대로 필요할 때 찾는 하나님을 다시 찾기 시작했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저를 긍휼히 바라봐 주시면서 제가 징징거렸던 고민을 들어주셨습니다. 바로 대학 합격입니다. 감사하는 마음도 잠시, 저는 금세 세상과 더 가까워져 있었습니다. 엄마 아빠라는 울타리를 나와, 선교지라는 우물을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니 그야말로 신세계였습니다. 해보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았고, 유혹도 너무나 많아 제가 지고 말았습니다. 즐거움과 쾌락과 세상이 주는 행복을 쫓기 시작한 것이죠. “그래, 이때까지 엄마, 아빠, 주위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수고했으니까 이 정도 즐기는 건 괜찮을 거야.” 스스로와 이렇게 타협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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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들어와서는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어버렸습니다. 과 모임, 동아리 모임, 친구들 회식 등등 참석 안 한 자리가 없었고, 오히려 제가 더 주도적으로 나서서 놀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온 대학인데 제가 이렇게 노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계셨을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하지만 당시 저는 깨닫지 못한 채 하나님을 외면, 아니 어쩌면 잊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입시 때부터 B시에서 지내서 교회는 B시에 있는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근처 대학교 캠퍼스 리더 언니를 알게 되었습니다. 만나자마자 정말 좋은 언니라는 것을 깨닫고 우연히 언니가 속해있는 유치부 공동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교회에 어떻게라도 붙어있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 시점에 유치부에 넣으신 것 같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는 항상 제 옆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셨는데 제 눈이 가려져 못 봤던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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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때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죄의식까지 사라지려고 할 최악의 상황에서 교회에 김용의 선교사님께서 오셔서 고난주간 집회를 하셨습니다. 제가 참가했던 콤케드의 MK캠프에 강사로 오셨던 김선교 선교사님의 아버지시라는 얘기를 듣고 집회에 참가했습니다. 이날 하나님께서 저를 만져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답답하셨는지 강권적으로 저에게 찾아와주셨습니다. 기도가 시작되자마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처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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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네가 어디에 있든지 어떠한 선택을 하든지 나는 항상 네 옆에 있고 너를 기다리고 만나고 싶어한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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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음성이 제 마음에 들려오기 시작하면서 저는 뒤집어졌습니다. 이때까지는 나와 전혀 상관이 없었던 부모님의 하나님, 설교하시는 목사님의 하나님, 또 어떤 누군가의 하나님이었는데 나의 하나님을 마주하는 순간이 되자 너무 벅차 눈물만 났던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처음 하나님을 만난 순간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하나님은 살아계시는구나. 나도 다른 사람처럼 하나님을 만날 수 있구나. 하나님도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저의 삶을 되돌아봤을 때 성한 곳 하나 없고 의미 없고 허무한 것을 쫓아가고 있었고, 기쁨도 없고 사랑도 없는 떳떳하지 못한 모습이었기에 하나님의 존재가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너무나도 감사한 순간이지만 또 너무 죄송하고 부끄러운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 너무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께서 나의 삶의 주인 되신 인생을 살겠다고, 더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겠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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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제 삶의 1부터 10까지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주위에 친구들이 바뀌고, 생활방식이 바뀌고,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 적 없는 제가 성경통독을 시작하고, 아빠가 매일 아침 지겹게 말해도 안 했던 큐티를 스스로 하게 되고, 캠퍼스 모임과 교회 예배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원하는 걸 구했던 제 기도 형식을 바꾸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를 올려드리고 싶어 방언에 대한 사모함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토요 새벽기도 때 간절히 회개하면서 구하자 그 자리에서 바로 하나님께서 제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기도하면 나에게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한 발 한 발 하나님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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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제가 제 삶의 주인이 되어서 악착같이 버티려고 애썼던 삶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니까 얼마나 행복하고 기쁨이 넘치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인내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응답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내 삶에서 더 많이 경험되길 원하고 하나님을 향한 나의 마음이 미지근한 것이 아니라 달아오르는 불처럼 항상 뜨겁기를 원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말씀처럼 이제는 제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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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MK스토리는 KOMKED장학생으로 선발된 MK들의 이야기입니다. MK스토리의 저작권은 한국선교사자녀교육개발원(KOMKED)에 있음을 알립니다.
다음 주, 새로운 이야기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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