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국선교사자녀교육개발원(KOMKED)입니다. 매주 금요일 찾아오는 MK스토리입니다.
오늘은 세 번째, T국의 천*엘 MK의 이야기입니다.
주님의 특별한 은혜와 사랑
T국의 천*엘 MK
저희 부모님은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선교에 대한 비전이 있었습니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C국, IN국, ID국 T국 등 여러 나라로 단기선교를 다녀왔습니다. 아버지는 교회의 외국인 근로자 성도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T국, S국, C국, KH국 등의 성도들을 섬기며 그들의 나라를 이해하고,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과 타지에서 겪는 어려움 등을 돕기를 원했습니다. 특히 타 언어로 예배드리는 외국인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교회의 외국인 근로자 사역을 자진하여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서 많은 국인을 만나게 되었고 서로 소통하고 교제하는 과정에서 기독교 복음화율 약 1%인 이 나라를 향한 비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희 아버지는 47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T국 선교사라는 새로운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현재 저희 부모님은 10년 차 T국 선교사로 동북부 지역에서 두 교회를 개척하여 사역 중입니다. 주중에는 T국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과 후 사역, 주말에는 예배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이사를 자주 다녔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부모님께서 T국으로 선교하러 간다고 말씀하셨을 때 저는 그 나이 다른 개구쟁이 아이들처럼 철없이 그저 ‘새로운 곳으로 또 이사 가는구나. 이번에는 조금 더 먼 곳이네.’ 했습니다. 새로 가는 그곳은 어떨까 상상하며 들뜨고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T국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적응하기 어려운 새로운 환경이었습니다.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뜨겁고 습한 공기와 T국 음식의 고수 냄새는 처음에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 제일 힘들었던 것은 누구와도 대화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알파벳밖에 모르던 저는 대부분 선교사 자녀가 그렇듯 B시에 있는 국제학교에 입학했고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영어로 수업을 들었습니다. 확연히 달라진 학교생활과 언어 공부 그리고 외국인 선생님에게서 느껴지는 차별에 부모님과 하나님을 많이 원망하며 혼자서 울기도 했습니다.
2년이 지나 그나마 B시에서 영어를 쓰는 데 적응이 되고 여기서 더 힘든 일이 있을까 하고 생각할 무렵 우리 가족은 B시에서 약 300km가 떨어진 새로운 곳으로 다시 한 번 이사하였습니다. 당연히 그동안 제가 B시에서 사귀었던 친구들은 다시 사라지고 모든 인간관계가 리셋되었습니다. 또한, 새로운 지역은 당연하게도 국제학교가 없는 지역이라 저는 T국어로 수업하는 현지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국제학교에서 영어로 수업을 들었을 때와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어 이해가 전혀 되지 않는 T국 현지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또 한 번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상황에 모든 게 불공평하게 느껴지고 크게 낙담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한 번 해왔던 길이라 그런지 새로운 학교의 T국 친구들이 잘 대해줘서 그런지 다행히도 처음에 모든 게 막막하게 느껴졌던 것과는 달리 금방 적응할 수 있었고 결국 중학교와 고등학교 모두 T국 현지 학교에서 졸업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주님께서는 꼭 제가 버틸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주시고 한국에서는 절대 경험하지 못할만한 상황에 적응하게 하시고 성장하게 해주신 것 같아 오히려 감사함이 느껴집니다.
저는 참 운이 좋은 것 같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T국에서 교회 사역을 하기에 저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 안에 손이 부족해 여러 일을 도와주며 자랐습니다. 처음에는 교회 청소부터 시작해 어린이 사역 교사, 단기선교 팀 통역, 그리고 나중에는 부족하지만, 예배 인도자까지 오기까지 많은 사건·사고 안에 주님이 주신 많은 배움의 기회로 정말 다채로운 경험을 해본 것 같습니다. 그중에는 힘들고 지치는 일들과 기쁘고 좋았던 일들이 많이 있었지만 아무리 힘들었던 그 일들도 결국엔 저에게 살과 피가 되는 주님의 계획 안에 있었다고 저는 믿고 있고 실제로 힘든 일들도 저에게 유익하고 정신적으로 성장하게 되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재작년 3월에 저는 제주 열방대학에 아버지의 뜻하지 않은 권유로 미션빌드로 약 2개월간 지냈습니다. 제가 간 처음 2주간 회의가 있어 외국 선교사님 아이들을 돌보게 되었고 회의가 끝난 다음 저는 약 1달 반 동안의 시간에 상상도 못한 리어카를 끌고 영업부의 한 간사님을 따라다니면서 지하실 창고를 청소했습니다. 당연히 꿈에도 꾸지 못할 일을 하는 동안은 고달프고 당장에라도 그만두고 싶은 욕구가 솟아올랐지만, 열방대학의 여러 간사님 그리고 학생들을 만나고 소통하고 교제하면서 주님에 대한 관점이 바뀌고 저의 신앙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선교사 자녀로서 이런 힘든 일이 있었지만 좋은 일도 많이 있었습니다. 제가 아직 T국 학교에 다닐 때 꼭 저에게 필요했던 단기선교사 형, 누나들을 주님께서 보내주시고 그 단기선교사 형, 누나들에게서 수학 같은 꼭 필요한 과목 도움을 많이 받게 하셨습니다. 또한, 피아노도 단기선교사 누나들한테서 배워 나중에 단기선교사 누나들이 돌아갔을 때 교회에서 대신 피아노 반주를 하게 하셨고 또 특이하게 T국 찬양팀 음향 엔지니어분에게서 기회가 되어 기초적인 음향장비를 세팅하는 법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색다른 경험들이 선교사의 자녀가 아니었다면 절대 누리지 못했을 만한 것이고 보잘것없는 저에게 여러 배움의 기회를 주셨고 저도 이런 축복과 같은 경험과 배움 없이는 지금의 저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저는 더욱 주님께 감사함을 느낍니다.
T국에서 약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힘들었던 매 순간 주님은 저와 함께해주시고 제가 불만족스럽게 느꼈던 결정이어도 결국 저에게 이익이 되는 최선의 길로 인도해주셨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영어와 T국어를 배웠던 경험도 주어진 환경 속에서 T국 현지 학교에서 학업을 이어나갔던 힘든 순간들도 결과적으로 제가 T국의 가장 좋은 대학인 M대에 입학할 수 있게 하신 주님이 저를 위해 계획해두신 은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어려운 환경과 부족한 저에게 주님께서는 제가 정말 버틸 수 있을 만한 시련과 알맞은 다양한 경험과 기회를 꾸준히 주셔서 더욱 성장하게 하시고 훈련하시며 이끌어주셨습니다. 저는 주님의 계획을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성장하는 크리스천으로서 아직도 미래의 어떤 꿈과 비전으로 살아갈지는 확실치 않지만 저는 주님의 특별한 방식의 은혜와 사랑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며 제가 받은 은혜를 갚아가며 크리스천으로서 주님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온 힘을 다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