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저는 태어날 때부터 MK인 “모태 MK(?)”는 아닙니다. 한국,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저희 부모님께서는 선교단체에 소속되어 계셨고, 아버지께서는 선교에 대한 열망이 강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파송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부터 모태신앙으로 MK가 되기 위한 준비가 되어가고 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하게 저는 순종적인 아이였고, 부모님의 교육철학에 따라 어릴 때부터 기독교 배경을 쌓아갈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제게 한국사와 다름없는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 자리잡혔고, 제게 성경의 진리는 당연한 것으로 각인되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이것조차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느낍니다. 모태신앙이어도 결국 주변 환경이 이와 반대되는 경우에 기독교 정신보다 세상적 정신이 그들 가운데 많은 부분을 잠식하게 되면서 습관처럼 나가던 교회마저 결국 나가지 않게 되는 경우를 요즘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만큼 새삼스럽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 모든 것은 MK로 세워주시고 현재의 저를 빚어나가시기 위한 준비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MK의 삶은 2010년에 시작되었습니다. 2009년 하반기, 이제 막 초등학교 4학년을 마쳐가던 무렵, 저희 아버지께서 갑자기 제게 질문하셨습니다. “아프리카에 가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니?” 저는 아프리카가 어떤 곳인지도 잘 몰랐고, 비행기도 한 번도 타보지 못했기에 비행기를 탄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너무 설렜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상상도 못 한 채 적극 찬성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 3월 3일, 비행기를 타고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오지 B국에 도착했습니다. 부모님께서 파송 받으심과 동시에 저는 MK가 되었습니다. 현지에 도착한 후, 현실과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완벽히 다른 대륙, 나라, 문화, 언어, 사람들은 저에게 아주 큰 도전이었습니다. 저는 기질적으로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이 큰 도전은 커다란 공포로 바뀌었습니다. 한국어 밖에 할 줄 몰랐고, 한국어로만 공부했던 저는 한순간에 다른 나라의 언어로 기존의 공부를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고난이었습니다. 또한, 새로운 언어를 사용해서 친구들을 사귀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저를 더 내성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정말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적응하는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